성지순례를 목적으로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을 찾는 한국인 방문자들의 수가 하루 다르게 늘고 있습니다. 한국인 여행사도 늘어났고, 가이드를 직업으로 하는 분들의 수도 눈에 띄게 많아졌습니다. 한국인 방문자들 가운데는 미주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최근 5년 사이의 큰 변화입니다. 여러분들 중에 '성지순례'라는 단어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을 것 같습니다.
시간과 물질을 투자하여 여행 가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경을 배우기 위하여 성지 즉 성경의 무대를 찾는 분들이 유람하듯 순례 일정을 따라다니는 것을 볼 때는 아쉽고 안타깝기만 합니다. 특별히 목회자들이 준비되지 않은 여행을 하면서 은혜와 감동을 말할 때면 마음이 상하기도 합니다.
성지순례를 왜 하는지요? 성지를 거룩한 땅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스라엘은 거룩한 땅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이 마치 신앙생활의 목표이고 남은 과제인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합니다. 성지를 은혜의 땅으로 생각하고, 그 땅에 다녀오는 것으로도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땅이 따로 존재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성경의 무대로서의 성경의 땅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성경을 더 잘 알고 깊이 깨닫기 위한 현장 성경 공부 프로그램으로서의 성지 방문은 나름 의미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성지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준비가 부족하고, 일정 진행 중에 성경으로 고민하는 경우가 적고, 여행 후에 복습하는 경우는 더더욱 적은 것 같습니다.
성지 순례, 왜 하려고 하세요?
물론 다양한 입장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중심으로 - 물론 거룩한 땅의 개념만은 아니지만 - 생각하는 경향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이집트나 다른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오가는 교차로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짧은 일정의 성지 순례 일정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이스라엘 지역 방문에 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싶어 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아쉽기만 합니다. 그것은 모처럼의 성지 순례가 성경을 이해하고 깨닫는 지평을 넓게 하기보다 성지순례에 동참했다는 만족감으로 다가서도록 돕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지순례라는 용어보다 성지 답사나 성지 탐사라는 어휘를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단어만 바꾼다고 그 내용이 바뀌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그럼에도 단어 선정을 통해 성지 답사가 가져야할 본질과 목표를 명확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지답사는 왜 하여야 할까요?
그것은 책이나 비디오로는 제대로 느끼고 배울 수 없는, 현장 답사를 통해서만 맛볼 수 있다는 바로 그 것을 위하여 성지 답사는 필요한 것입니다.
성지에 대한 개념 재규정
여기서 성지에 대하여 다시 규정해봅니다.
성지, 물론 거룩한 땅이 아니라 성경의 땅이라는 의미로서 성지를 규정할 수 있습니다.
어디가 성지일까요?
그렇다면 어디가 성지일까요? 성지는 성경의 무대입니다. 성경의 무대이고 성경의 땅이 성지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의 현장이 성지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행하시던 그 사역의 현장이 성지입니다.
3) 믿음의 선진들이 말씀을 듣고 반응하고 살던 그 무대가 바로 성지입니다.
이런 장소들을 편의상 특정 성지로 부르고자 합니다. 성경에 그 장소 이름이 한 번 이상 언급되는 장소들입니다. 특정 성지들은 이스라엘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요르단은 물론 이고 레바논, 시리아, 터키, 이라크나 예멘, 이집트 등도
다 특정 성지들이 가득한 성지입니다.
일차 성지 순례는 성경 무대의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 주목한 다면 성경의 무대에 대한 전반적인 의미와 기본 이해를 돕는 코스와 일정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습니다. 아울러 성지의 개념은 이보다 넓어야 합니다.
4) 성경의 말씀이나 사건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무대도 성지입니다. 광야나 강, 산과 골짜기, 들판도 성경의 무대입니다.
이런 성경의 무대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이름이 언급되지 않기에 무심코 지나치는 장소들 입니다. 그러나 특정한 성지 이상으로 소중하고 중요한 장소들입니다. 이런 장소들은 편의상 불특정 성지 不特定 聖地로 표기합니다. 불특정 성지들은 이스라엘 지역보다 인근 이집트나 요르단 등에 더 넘쳐 납니다.
이집트를 모르고 출애굽 과정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고, 모압, 암몬, 에돔과 길르앗, 데가볼리 지경을 모르고 가나안 정착 이후의 성경을 이해하기 힘듭니다. 아람과 앗수르, 바벨론 등을 모르고 소선지 시대를 풀이하기 힘듭니다.
성지에서 무엇을 보아야 할까요?
널리 알려진 성지(특정 성지)에는 시대를 거듭하면서 수많은 문명이 존재했습니다.
이런 곳을 방문했을 때 우리들은 수많은 정보들을 접하게 됩니다. 수백 수천 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지금 남아있는 건축물들에 대한 상세한 소개도 받게 됩니다. 마치 정보의 홍수에 휩쓸려가는 기분을 느낄 정도일 것입니다.
이런 정보의 강물에 너무나쉽게 성지 방문의 목적을 상실하곤 합니다.
특정한 성지에서 주목할 것은 성경 사건이나 기록(말씀)과 직접 연관이 되는 그 때 그 자리에서는 것입니다.
그 장소에서 수 천 년의 역사 이야기를 듣는 것은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 장소에 얽힌 수 천 년의 역사 이야기를 몰라도 그리고 아주 자세하게 알아도
성경 해석에 별다른 영향력을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특정한 성지를 방문했을 때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것은 성경 말씀의 동시대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너무 많은 간접적인 정보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요르단의 느보산을 방문하였다고 할 때 우리가 주목할 것은 느보산이 언급된 모세 당시의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곳에 세워진 교회당의 건축 양식이나 역사는 몰라도 느보산의 모세 당시의 지정학적인
위치나 역할, 성경에서의 의미 등에 주목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요르단의 대표적인 유적지 페트라는 또 어떻게 볼 것인가요? 단순하게 말하자면 그 장소가 신시대에 연결시킨다면 예수님 당시의 상황에 주목하여 보는 것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회심 후 아라비아임을 고려한다면 1세기 중엽의 페트라의 종교 정치 상황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고대 에돔의 변방도시로서 페트라에 주목한다면 소선지서의 동시대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엘카즈네의 화려한 건축기술에 대해 자세하게 안다고 하여도 바로 앞서 언급한 질문들에 대한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다시 정리한다면 특정한 성지를 방문할 때 그 장소에 얽힌 모든 이야기를 들으려고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특정한 성지의 특정한 사건과 인물에 연결하여 그 장소를 연구하는 일이면 족합니다.
물론 한 장소에서 수많은 성경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그 경우도 각인 물에 관련한 그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그 장소를 살펴보는 것이면 족할 것입니다.
성지 여행에 있어 특정 성지에 집착할 경우 놓칠 수밖에 없는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사건이 특정 장소에서 일어났을 경우에도 인근 지역과 상호 연관되어 발생하였다. 그것은 그 특정 장소를 오가는 도로는 물론이고 그 장소를 둘러싼 지정학적인 위치나 개념들, 자연 환경 모두가 그 특정 장소에서 발생한 특정 사건을 이해하는데 요긴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특정 장소를 가고 방문하는 것에만 주목하면 이런 중요한 내용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시내산에 주목하고 시내산 등정에 관심을 쏟는 다면 출애굽 당시 시나이 반도 곳곳의 광야의 특성들이나 그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해석하고 풀이하는데 서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고센에서 시내산까지 가는 과정(길)에는 무엇이 어떤 환경으로 둘러싸여 있는가를 관찰하는 것은 시내산 등정 자체보다 의미 있는 일입니다. 물론 이런 지적도 성지 순례를 성경 탐험을 위한 성지답사 의미로 생각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성지를 방문할까요?
성지에서 성경을 읽는 것은 중요합니다.
"TV 드라마는 그렇게 감동적인데 성경은 밋밋하고 윤리 교과서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곤 한다." 이런 생각에 여러분들은 어떤 판단이 서시는지요? 성경을 읽으면서 4계절을 느끼시나요? 성경 이야기를 대하면서 냄새를 맡으시나요? 성경에서 냄새를 맡으며, 성경에서 소리를 들으며 성경 속 4계절을 느끼며 성경을 읽을 수는 없을까요? 몇 가지 생각을 고민해 보겠습니다.
1) 성경사건과 말씀의 4계절에 주목합니다.
성경의 사건과 메시지는 어떤 특정 시공간에서 벌어졌습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등 계절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경의 무대였던 오늘날의 이스라엘, 요르단, 이집트,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이란 ... 그곳에도 사계절이 있었습니다.
온도차가 있고, 체감 온도가 다르지만 추운 겨울과 뜨거운 여름이 있었습니다. 일교차도 존재했습니다.
홍수가 나기도 했고, 가물어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건기도 있었습니다.
요단강에서 예수님이 세례 받으신 계절은 봄이었을까요, 아니면 다른 계절이었을까요?
요단강은 해마다 보리 수확기에 범람하곤 했습니다. 일부 요단강 주변 지역은 상습 침수 지역으로 손꼽히기도 했습니다.
특히 '사르단 언덕 가까운 아담 읍' 지역은 대표적이었습니다.
봄철에 요단강을 오갔던 이들은 헤엄을 쳐야했거나 나룻배를 이용하여야 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요단강에 놓인 다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작은 개울에 불과했지만 범람할 때면 최대 1킬로 이상으로까지 강폭이 불어나기도 했습니다. 물론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달랐습니다.
다윗은 "왕들의 출전할 때" 즉 봄철에 이르렀을 때 다윗왕은 요압을 원정 사령관으로 하여 암몬왕국의 수도 랍바 암몬 성을 공격하도록 합니다. 밧세바와 스캔들을 일으킨 다윗왕은 자신의 행위를 은폐하기 위하여 우리야를 불러들입니다.
특별 휴가 명령을 내린 것이지요. 우리야가 다윗의 부름을 받아 예루살렘을 오갈 때 요단강은 범람하고 있었습니다. 필시 나룻배를 이용하여 요단강을 건너야 했을 것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40일간 독대한 사건은 최소한 두 번 이상입니다. 그 중 한번은 겨울이었습니다. 시내산은 한겨울에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엄동설한에 시내 산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모세가 모압평지에서 언약을 갱신한 때가 출애굽 40년 11월 1일의 일이니 양력 2월 초순의 일입니다.
이때는 눈이나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닥치는 계절입니다. 느보산에 올라 하나님과 대면하고 생을 마감한 시기는
12월 1일이니 양력 3월 초의 일입니다. 요르단도 겨울이면 눈도 내리고 비바람이 몰아칩니다.
봄철이면 들판이 들꽃으로 푸름이 가득 합니다
2) 성경 속 등장인물의 나이에 주목합니다.
어린 나이인지 젊은 때인지 아니면 노년기인지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 속 등장인물들도 생로병사하기 때문입니다. 수퍼맨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던 때의 야곱의 나이는 얼마였을까요? 물론 97세가 넘은 나이였습니다. 그 나이의 노인네가 삿바씨름 하듯 천사와 힘겨루기를 했다고 상상할 필요는 없습니다.
3) 성경의 무대(성지)의 지리적인 시공간 개념에 주목합니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직선거리 개념으로 우리들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길을 따라, 강과 산 골짜기를 따라 이동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평면 지도 상으로 지름길로 보여도 그곳이 협곡이 있는 곳이라면 소요 시간은 더 많이 걸렸을 것입니다.
아울러 같은 거리라도 그 오가는 길의 지형적인 특성은 소요 시간이 다르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부드러운 모래사막을 걸을 때와 탄탄한 평지 길을 갈 때 가파른 협곡을 따라 이동할 때 걸리는 시간이 다른 것입니다.
이세벨의 위협을 피해 호렙 산으로 도망한 엘리야의 예를 생각해봅니다. 브엘쉐바(브엘세바)에서 호렙산까지의 거리는 통상 150킬로미터 정도입니다. 당시 장정들이 평지를 이동할 때 하루에 20킬로 정도를 이동했습니다.
도망중인 엘리야가 150킬로미터 정도를 가는데 40일이 걸렸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을까요? 그것은 브엘세바에서 호렙산으로 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길과 뜨거운 뙤약볕으로 인해 아무리 서둘러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4) 성경 시대의 이동 수단에 주목한다.
성경 시대의 이동 방식은 도보, 나귀나 수레, 말이나 마차, 낙타 등을 이용하는 경우였습니다. 나귀나 다른 여타 교통수단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같은 거리라도 이동 수단에 따라 걸리는 시간이 달랐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은 도보 여행 이외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아마 여러분들의 경우도) 불과 수십 년 전만해도 신발 한 켤레 없이 지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무신도 아닌 운동화는 그야말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2천 년 전 예수님 시대에 고급 신발이었던 가죽 샌들을 신고 다닐 수 있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맨발로 다녀야 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가파른 벼랑이나 가시밭길을 가는 데는 무척이나 고단한 여정이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매 온 성이 소동"(마 2:1)하였습니다. 동방은 오늘날 이라크와 이란 지역이 만나는 지역인데, 그곳에서 예루살렘 까지는 1500킬로미터 이상입니다. 낙타를 타고 하루에 20킬로안팎을 이동하였다고
했을 때 예루살렘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은 2~3개월의 기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이렇듯 다 알고 있는 내용들을 자세하게 적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동이나 여행을 둘러싼 그런 행간을 읽어내는 것이 성지답사에서 중요한 과제입니다.
성지순례의 시기
성지순례의 시기는 성수기 비수기 등으로 구분되나 효율적인 여행을 하려면 여행 비수기를 택하시는 것이 좋습니다. 비수기에는 여행경비가 저렴하고 또 성지(여행지)에서는 더 많은 써비스와 환대를 받게 되며 모든 면에서 성지가 혼잡하지 않아 여행 흐름이 유연하여 짧은 시간에도 여유롭게 많은 순례를 할 수 있습니다.
성수기는 1, 2월과 7, 8월이 최고의 성수기인데 이유는 주로 방학기간과 휴가기간 그리고 연휴, 때입니다. 또한 4월은 유럽인들의 부활절휴가 기간이기 때문에 매우 혼잡 합니다.
그리하여서 현지 기후가 쾌적한 3월, 5월, 6월, 10월, 11월 경에 떠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본격적인 성지 탐사
이제 본격적으로 성지(성경의 땅)에서 성경 읽기를 시작해 봅니다.
1) 시공간 속에서 성경을 느끼도록 애쓰시기 바랍니다.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벌어지고 기록된 성경 말씀을 입체적으로 읽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작은 수고가 필요하다. 그 수고 중에는 앞서 말씀드렸던 성경의 계절 이해하기, 성경 속 등장인물의 나이 고려하기, 성경 속 장소의 거리감 이해하기,
이동 수단 고려하기 등입니다.
2) 성경 본문의 길이는 의미가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건은 성경 지면을 많이 차지하면 중요한 사건이고 간략하게 언급하면 덜 중요한 사건일까요?
어떤 면에서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것일 경우가 있습니다.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고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성경 시대 사람들에게 공공연했던 그것이 우리에게는 감춘바 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윤 목사님, 사무실 맞은 편 사거리 식당에서 만나요!" "예, 조 목사님. 그러면 3시에 그곳에서 봐요." "그렇게 해요, 여기서 가면 차로 30분 걸릴 것 같네요. 그 시간에 교통 체증이 심하잖아요." "알았습니다. 그러면 "그 때 그 곳에서" 뵙겠습니다."
이 대화 안에는 분명한 시간과 장소가 나옵니다.
그러나 그 약속 시각과 만나는 장소가 언제,어디인지는 아는 사람만 알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한국말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제3자가 그 장소와 시간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장소 이름도 나오고 시간도 나오지만 그것이 어디이고 언제인지 모를 경우가 많습니다. 평면으로 성경을 읽었기 때문입니다.
3) 음식과 지역 특산품에 주목하라!
성지에서 먹을 수 있는 토속 음식들은 성경 시대 사람들도 즐기던 것들입니다. 그 음식에 얽힌 사연이나 맛을 즐기고 확인해보라. 이를 위하여 성경에 등장하는 지역 특산물의 목록을 지역별로 작성해보고, 방문 지역에서
과연 그것이 그런 이유가 있었는지를 짚어보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헤브론 포도 맛은 정말 좋은지, 레바논의 백향목은 어떤 면에서 최고의 나무인지, 싯딤 나무는 언약궤를 만들 어떤 특성이 있었는지, 여리고 종려나무 열매는 다른 지역 종려나무 열매와 어떤 구별이 있는지, 밀전병과 보리떡은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말린 무화과 뭉치는 얼마나 무겁고 영양가가 충분했는지, 쥐엄 열매는 정말 맛도 없고 영양가도 없는 것인지 "등"
방문하고 싶은 특정 장소 말고도 우리가 직접 맛봐야 할 것이 의외로 많습니다.
4) 정보의 홍수에 떠내려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직간접적으로 성지 방문자들을 보면서 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성지에 왔는데도 성경을 느끼지 못하고 성경을 보면서도 성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초신자들의 모습이 아니라 신앙 연륜이 깊다고 자평하는 이들 가운데서 그런 모습이 발견되는 것은 안타까움입니다. 성경을 눈으로 읽어왔을 뿐 시공간 속에서 호흡하지 못한 때문일 것입니다. 열심히 졸다가 차가서면 일어나 차에서 내려 사진 찍고 그리고 또 다시 이동하고…. 어떤 현장에 도착하면 그 곳에 있다는 건물이나 시설에 관한 정보를 열심히 듣고 메모도 하지만 그때 성경은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니 저렇게 수많은 연대와 수치들을 다 기억하고 있어! 대단하다!" 현지에서 만나는 안내인 에게 기가 질립니다. 덕분에 몰라도 성경 이해에 무관한 많은 정보들로도 버겁기만 합니다.
성지 답사는 방문 장소에서 성경의 사건이나 메시지가 왜 그렇게 선포되었는지, 그 자리에 서 보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장소이며, 성경 사건의 동시대의 어떤 것입니다.
한 장소에서 수천 년의 이야기를 듣고, 건축 양식의 어떠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연관된 성경의 무대에서는 예수님 시대 전후한 상황과 형편을 이해 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 장소에서 예수님 승천 이후 수백 년 뒤에 무엇이 생겼고 무엇이 지어졌는데 이렇고 저렇다는 식의 정보들에 몰입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5) 눈 뜨고 성경의 땅을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바쁘고 피곤한 일정이기에 성지 순례객들은 어떤 방문 장소로 이동하는 차안에서는 깊은 잠에 빠져들곤 합니다.
어쩔 수 없는 현실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눈감고 지나치기에는 성경의 땅에서 눈에 담아두어야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타까움이 듭니다. 차창 밖에 펼쳐지는 현장들도 성경의 무대이고 많은 이야기를 던져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6) 듣지만 말고 질문을 던지시기 바랍니다.
현지 안내자에게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고 또 현지 안내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성지 답사 목적에 크게 연관 없는 질문들을 남발하지는 마시고요.
무엇보다도 '왜?'라는 질문 던지기를 주저하지 말라. "이곳이 바로 그곳입니다"는 식으로 설명을 듣고 났을 때 "왜 그 장소가 이곳이어야 했나?"를 물으시기 바랍니다.
7) 지명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은 역시 다르다. 성경 시대 지명이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으니 대단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지금 이스라엘의 지명은 이스라엘 독립직후에 그동안 불려오던 현지 지명을
성경 지명으로 대대적으로 이름을 바꾼 결과입니다.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고 같은 장소는 아닙니다. 은평구 신사동도 있고 강남구 신사동도 있습니다. 성경의 무대에도 같은 이름의 다른 장소가 적지 않습니다. 벧세메스 같은 경우 고유명사로 일컫기도 했지만 태양신전이 있다는 곳이라는 본래 뜻대로 가나안 땅이든 이집트 땅이든 태양신전이 있던 곳을 그렇게 불렀습니다.
성경에서는 '벧세메스'라는 단어가 여러 번 나타나는데 현 이집트 지역과 이라크, 이스라엘 지역의 일정 지명으로 태양신의 숭배지로 등장합니다. 또한 시대에 따라 같은 장소인데도 다른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같은 장소를 놓고도 자국민(본토인)이 부르는 이름과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르던 지명들도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지명이 뒤엉켜져 성경에 나타난다. 성지답사는 이런 차이들을 구별하는 땅밟기입니다.
8) '욕심을 버리시고, '입장 바꿔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성지를 찾은 이들 중에는 "이왕 온 김에 이것저것 다 보고 가자!"는 바람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모처럼의 기회를 선용하고자 하는 간절함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욕심은 욕심일 뿐입니다. 주마간산도 정도가 있습니다.
체험이 없는 성지순례는 거품일 뿐입니다. 바른 성지답사를 위해서는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입장 바꿔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짧은 일정 중에 남들 가는 곳 다 가려는 것은 욕심입니다. 꼭 가야할 곳을 가기 위하여 남들다 가는 곳을 포기하여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남들 가는 곳도 다 가고 꼭 가야할 곳도 다 간다는 욕심을 접어두시기 바랍니다.
이런 목표를 성취하려하면 여러 사람 괴롭게 합니다.
성지에 가면 모든 것이 은혜라는 말에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진실이 있습니다.
남의 일은 그야말로 강 건너 불구경하는 식입니다. 성경을 읽는 우리가 성경 속의 등장인물이 되는 입장 바꿔 보기가 언제나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심판의 입장이 아닌 당사자 입장에 서기 위해서는 역지사지, 입장 바꿔보기는 필요합니다.
9) 선택하고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유적지는 대개 수 천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남아있는 유적에 얽힌 건축기법이나 연대 등에 대한 정보도 넘쳐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는 한 장소에 관한 정보를 책으로 써도 여러 권의 분량이 필요할는지 모릅니다.
그런 이유로 특정한 장소를 방문했을 경우 방문 목적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선택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배경과 무대를 찾는 것이라면 성경의 특정 본문에 연관된 특정 시대와 사건에 먼저 주목하여야 합니다. 직접 관련이 없는 시대나 배경에 얽힌 이야기는 시간 여유가 있을 때 접근 하도록 합니다. 성지 방문은 성경의 특정한 시간과 공간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 특정한 사건과 공간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구름에 달 가듯이 내 식으로 생각하면서 땅만 밟는 식의 여행을 순례라고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남이 가본 장소에
나도 서보는 것만으로 감동받는 것을 성지순례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지답사는 나도 성경 말씀이 말씀과 사건을 통해 드러난 그 때 그 자리에 함께 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울러 성경 말씀이 진리임을 알기에 '왜'라는 질문 이전에 '어떻게' 그 일과 말씀이 이뤄졌는지에 주목하는 성경 일정은 모세오경은 물론 이스라엘 왕국 시대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애굽적인 요소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보고입니다.
이런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다는 적지 않은 신념과 같은 지식에는 잘못된 것들도 있습니다.
지식은 정보이고, 정보는 바뀔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지식을 바로 잡는 것을 자신의 '신념'이 깨지는 것을 불신앙이라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잘못된 정보에 바탕을 둔 신념은 그 확신 정도와는 관계없이 깨닫게 하시는 성령의 손길을 통해 새로 자리 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